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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총성보다 뜨거운 결심 - 영화 ‘탈주’ 줄거리
2024년 7월 3일 개봉한 영화 ‘탈주’는 단순한 북한 배경의 스릴러를 넘어, 체제에 갇힌 한 병사의 도주를 통해 자유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 중인 군인 임규남(이제훈)입니다. 10년 넘게 군 복무를 해왔고, 조국에 충성하며 살아온 병장이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출신 성분 때문에 진급도, 전역 후의 삶도 막혀 있는 규남은 결국 목숨을 건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라는 말처럼,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하기 위해 남쪽으로의 탈출을 계획합니다.
영화는 규남의 탈출 시도와 이를 뒤쫓는 보위부 장교 리현상(구교환) 사이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규남은 매일 야밤에 몰래 철책을 넘는 연습을 하고, 정교하게 설계한 도주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폭발물 처리 임무를 기회로 삼아 분대 밖을 벗어나며, 자신의 탈주를 눈치챈 후임병 김동혁(홍사빈 분)과 예상치 못한 동행을 하게 되죠. 그러나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이들을 잡기 위해 도착한 보위부 장교 리현상이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흘러갑니다.
영화는 ‘비무장지대 탈주’라는 설정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전개는 단순한 액션 중심의 서사로 흐르지 않습니다. 배경은 북한이지만, 적으로 규정된 남한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부 체제의 억압과 계급 간의 갈등,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오랜 억눌림 끝에 터지는 한 병사의 내면을 따라가게 합니다. 94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응축된 서사는 단 한 순간도 느슨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관객에게 “왜 탈출하는가”보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추격 속에 숨겨진 두 병사의 내면
‘탈주’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탈출을 감행하는 병장 규남과, 그를 쫓는 보위부 장교 리현상. 둘은 물리적으로는 추격자와 도망자지만, 영화는 이들이 내면에서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규남은 단순히 도망치기 위해 탈출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드는 상황에서도,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계속해서 전진합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숲 속을 달리고, 지뢰밭을 기어넘고, 진창 속에서 끝내 다시 일어나는 장면들은 그의 의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죠.
이제훈은 이 규남의 내면을 몸으로 설명하는 배우입니다. 절박함, 분노, 두려움, 미련까지 모든 감정을 얼굴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표현해냅니다. 극 중에서 그는 온몸에 진흙과 피, 상처를 입은 채 숨을 몰아쉬며 달립니다. 한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의 고통과 끈질김이, 액션이 아닌 감정으로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외면은 초췌하고 거칠지만, 그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인간의 본능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연기가 이 영화의 서사를 단단히 붙들고 있습니다.
구교환이 연기한 리현상은 또 다른 축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체제에 순응한 엘리트 장교로, 규남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방식대로 생존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세세한 습관과 외적 특징들입니다. 항상 립밤과 향수를 챙기고,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불안정한 인물인지를 암시합니다. 구교환은 현상의 외적 위압감 속에 숨겨진 불안과 자기방어를 절제된 연기로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통해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길을 확인하게 됩니다. 규남은 체제를 거부한 자, 현상은 체제에 순응한 자. 하지만 끝까지 관객은 누구도 선악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둘 다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총과 군화 뒤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게 만듭니다.남북의 이념이 아닌 인간의 갈등
‘탈주’가 돋보이는 이유는 이념보다 사람을 먼저 다룬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북한 배경 영화들이 남북 대결 구도를 전면에 내세운 것과 달리, 이 영화에는 남한 군인이나 체제는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습니다. 규남을 잡으려는 것은 적군이 아니라, 같은 군복을 입은 동료이자 상부입니다. 그가 도망치려는 이유 역시 ‘체제의 억압’이 아닌, ‘살아도 아무 기회도 없는 절망’ 때문입니다. 그 절망은 출신 성분 하나로 미래가 봉쇄된 청년에게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탈주’는 정치적 영화가 아닙니다. 대신, 자기 의지로 미래를 선택하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부여되지 않은 이들이 서로를 쫓고 밀어내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감독 이종필은 “도저히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발버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 속 규남은 단 한 번도 큰 목소리로 체제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원합니다. 바로 그 점에서 관객은 그의 탈출을 응원하게 됩니다. 반면, 현상 역시 체제에 기대어 살아왔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맞추며 애써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영화는 이런 대비를 통해 우리가 ‘사회적 위치’로 나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폭력인지, 그로 인해 평범한 삶조차 얼마나 멀어지는지를 조용히 말합니다.
‘탈주’는 그러한 메시지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고요하고 묵직하게, 땀과 흙과 고통을 입은 한 사람의 몸짓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진하고, 더 오래 여운이 남습니다. 영화는 U+모바일tv, 쿠팡플레이, 왓챠, Wavve, 애플tv, 넷플릭스에서 다시보기 가능합니다.반응형'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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